<그래픽> 식량 자급 현황
(서울=연합뉴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 우리나라 식량.곡물 자급률 및 OECD 곡물 자급률 비교. sunggu@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
자급률 사상 최저..'식량 貧國' 전락 우려
곡물 수출중단 등 국제시장 곳곳 '지뢰밭'
"국가가 자급률 관리하고 해외생산기지 확보해야"
(청주=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식량안보가 위기를 맞았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주요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밀 등의 수출중단에 나서고 '세계의 농장'인 중국이 최대 식량 소비국으로 바뀌면서 쌀.옥수수 수입에 나서는 등 국제상황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여 곡물 파동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식량 자급률 등 식량안보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각종 지표에 적색등이 켜지고 있다.
◇뒷걸음치는 식량ㆍ곡물 자급률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지난해 사상 최저인 51.4%로 떨어졌다.
1980년 69.6%였던 자급률이 1990년 70.5%로 다소 높아지긴 했으나 이후 큰 폭의 하락세가 이어져 1995년 55.7%, 2000년 55.6%, 2005년 54%로 내려갔다.
특히 보리(44.3%), 콩(32.5%), 옥수수(4%), 밀(0.9%) 등의 자급률은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쌀(98%)을 제외하면 우리 식탁을 외국 농산물이 차지하는 '식량 빈국(貧國)'인 셈이다.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더욱 심각하다.
1980년 56%를 보였으나 1990년에는 43.1%로 떨어진 데 이어 2000년 29.7%, 지난해 26.7%로 하락, 곡물의 3/4을 외국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식량자급률은 의미가 없으며 곡물자급률이 실상을 잘 반영하는 개념이라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곡물 자급률이 최하위권에 머물면서 세계 5위 수준의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국제 곡물 시장의 작은 변화에도 쉽게 흔들리는 허약한 체질이라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형편없는 식량ㆍ곡물 자급률은 농업기반 붕괴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세계 각국이 식량난에 대비해 수출을 통제하는 등 식량 민족주의로 나가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식량안보에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이농ㆍ농지감소 식량안보 '빨간불'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수는 138만2천가구로 전년보다 2.2%가 감소했고 1년간 무려 19만명이 농촌을 떠나면서 농가인구도 4.3% 줄어든 421만명에 불과하다.
최근 10년간 농가수와 농가 인구 연평균 감소율이 2.5%, 4.9%에 달해 '농민 없는 농촌'이 현실화될 우려를 낳고 있다.
농촌 고령화는 더 거론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농민 고령화율이 34.2%를 기록해 농촌인구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 노인으로 나타나는 등 고령화 추세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농지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의 '2009년 경지면적 조사결과'에 따르면 총 경지면적이 173만7천㏊로 1년 전보다 1.3%(2만2천㏊)가 감소했다.
경지면적 연간 감소율은 2005년만해도 0.6%에 머물렀으나 2006년 1.3%를 기록한 뒤 4년 연속 1%를 넘어서면서 최근 5년간 9만㏊가량의 농지가 사라졌다.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은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0년엔 농지규모가 158만8천㏊로 줄 것으로 전망, 식량안보 차원에서 확보해야 할 최소 농지인 165만㏊를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에서 곡물 자급률이 2020년에는 23%까지 떨어질 것이란 예측까지 나와 지금처럼 이농과 농지감소가 이어질 경우 식량안보의 보루마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불안 키우는 국제 시장
국제 곡물시장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면서 각국이 수출제한 등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최근 밀값이 크게 오르면서 유럽 등에서 사재기 현상이 목격됐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일부 국가에서 폭동까지 발생했던 2007, 2008년 '곡물 파동'까지 떠올리게 하고 있다.
세계 3대 밀수출국인 러시아의 가뭄,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캐나다 등의 밀생산 감소 등에 따른 밀값 폭등이 이 같은 우려의 도화선이 됐다.
더욱 문제는 이들 곡물 수출국의 움직임이다.
러시아는 8월에 밀 수출을 금지했고 우크라이나는 내수 공급 안정을 위해 곡물 수출제한에 나섰다.
여기다 식량 생산량 1위인 '식량 대국' 중국이 베트남에서 쌀 60만t, 미국에서 옥수수 120만t을 수입하는 등 곡물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등 식량 안보 위험에 대비해 발 빠르게 곡물 사재기에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이오 연료 생산에 따른 곡물 수요 증가도 식량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옥수수 생산량의 30% 이상을 바이오 연료 생산에 사용하고 있으며 브라질은 바이오에탄올 생산을 2배, 바이오디젤 생산을 4배 각각 늘렸다.
이에 따라 OECD와 식량농업기구(FAO)가 6월에 발표한 '2010∼2019 농업전망 보고서'는 1997∼2006년 가격에 대비해 10∼20%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던 곡물 인상률을 최고 40%까지로 상향조정하면서 자급도가 낮은 국가의 식량안보에 비상이 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투기자본 가세 곡물시장 위협
세계 곡물 시장은 '큰손'인 곡물 메이저가 장악, 막대한 자금으로 생산지와 시카고 선물거래소 등에서 곡물을 사들인 뒤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다.
세계 곳곳에 선박회사, 저장시설까지 갖추고 밀, 옥수수 등 곡물뿐 아니라 종자, 농약, 가공식품까지 식량과 관련된 것에 닥치는 대로 손을 뻗고 있다.
전 세계 교역량의 75%를 차지하는 4대 곡물 메이저는 신경망처럼 퍼져 있는 유통망을 통해 곡물시장을 장악, 가격이 급등할 때 시장 지배력을 무기처럼 휘두르고 있다.
2008년 곡물가격 급상승에 투기세력이 개입했다는 분석도 나오면서 지난해 11월 로마에서 열린 유엔 식량 정상회의에서도 식량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우리나라처럼 곡물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경우 이들이 목줄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농업관련 연구기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옥수수와 밀 수입의 87%, 61%를 4대 메이저에 의존한 것으로 나타나 곡물 메이저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곡물의 에너지 자원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곡물도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된 지 오래다.
투기자본은 금융시장에 개입하듯 곡물값이 떨어질 때 사재기한 뒤 가격이 오르면 내다파는 식으로 국제 시장에 개입, 날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만큼 곡물 가격의 변동성이 높아지고 수입국들의 식량안보도 갈수록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잡곡도 챙기고 해외로 눈 돌려야"
농업 전문가들은 국내 생산기반 보호와 외국 농산물의 안정적인 확보를 꼽고 있다.
우선 농업계에서는 식량 자급률 법제화와 농지 전용 최소화, 후계 농업인 양성, 곡물생산 시스템 변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식량자급률 목표를 농업 관련법에 명시한 뒤 범국가차원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창한 정책위원장은 "식량자급률의 법제화는 농림수산식품부뿐 아니라 정부의 각 부처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를 통한 농업에 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식량자급률은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매년 2만㏊ 이상의 농지 감소를 막으려면 농지 60% 이상을 소유한 부재지주의 토지를 농업에 이용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농지전용의 최소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업 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농민과 농촌에 대한 문화.복지.교육 지원 정책을 강화해 후계 농민을 안정적으로 육성하는 방안과 쌀 중심 농업을 밀, 콩 등으로 재분배하는 종합적 대책도 나와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또 농업 분야의 해외진출, 곡물 메이저에 의존한 조달체계 개선 등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용택 선임연구위원은 "개방화를 맞아 우리 농업도 해외에 진출해 농산물을 생산하고 비상시에 국내에 들여오는 등 공세적으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농업 회사 법인이나 영농법인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만드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제 교역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져 곡물 메이저에 의존하는 방식은 위험성이 있는 만큼 수입선을 다양화하고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필요한 농산물을 수입할 수 있도록 장기계약 등의 방안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bwy@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10/14 06:3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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