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이 어떤 글자인가? 한국인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쩌면 공기 속에서 살지만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한글이 세계 최고의 글자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그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모두가 머뭇머뭇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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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박사가 한글 창제원리와 훈민정음의 구성을 밝힌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 아이세움, 2007 | 이제 그 궁금증을 명쾌하게 풀어준 책이 나왔다. 오랫동안 훈민정음을 연구해왔으며, <조선시대 언문의 제도적 사용 연구> 등 훈민정음과 관련 다양한 책을 냈던 김슬옹 박사가 아이세움을 통해서 펴낸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이 그것이다.
저자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까닭을 말한다. 그 핵심은 물론 세종의 백성 사랑이지만, 정인지가 쓴 [훈민정음 햬례본]의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를 거론한다. 우리가 쓰는 말과 중국의 말이 다른데 같은 글자를 쓰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어는 한국이나 다른 동양의 나라들과 달리 영어처럼 ‘나는 너를 사랑한다’를 ‘위 아이 니(나는 사랑한다 너를)’라고 쓰기에 정인지가 말한 ”둥근 구멍에 모난 도끼 자루 끼는 언어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종이 독창적이 아니라 다른 글자를 보고 베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님을 얘기한다. 세종은 당시 조선에 알려졌던 모든 문자 곧 대표적인 음운문자였던 산스크리트 문자, 초성자과 종성자가 같은 파스카 문자들을 많이 참조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훈민정음의 문자 체계와 효율성은 기존의 어떤 문자와도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독창성을 의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 한자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논리 가운데 한글만 쓰면 우리 옛 고전이나 역사를 알 수 없고, 문화는 크게 뒤쳐진다고 걱정한다. 사실 그런 걱정은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던 최만리의 상소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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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어진(김학수 그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이렇게 되면 수십 년 후에는 한자를 아는 자가 반드시 적어져서, 비록 언문으로써 능히 사무를 본다 할지라도 성현의 글을 알지 못하고 배우지 않아 무식쟁이 되어 세상 이치의 옳고 그름에 어두울 것이오니, 언문에만 능숙한들 장차 무엇에 쓸 것이옵니까. 우리나라에서 오래 쌓아 내려온 학문을 숭상하는 교화가 점차로 몽땅 없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에 세종은 “이두를 만들어 낸 본뜻이 백성을 편리하게 하고자 한 것이라면 지금의 언문도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 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훈민정음 창제의 목적이 한자를 없애려 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편리하게 쓰는 글자를 생각했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한자는 한자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해당 학자들이 더욱 깊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 이 책은 훈민정음을 만든 주요 원리들을 설명한다. 이에는 천지자연의 소리를 구현하는 바탕 층위, 음운의 이분법과 삼분법의 과정 층위, 훈민정음의 상형원리들을 들어 상세하게 풀어주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일제강점기인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극적으로 발견되어 간송 전형필 선생에 의해 잘 보존되어 오늘까지 전해왔기에 훈민정음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음도 얘기한다. 해례본은 안동의 광산 김씨 종가인 긍구당가에 있던 것을 당시 종손인 김응수의 사위 이용준이 유출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이렇게 훈민정음에 대해 꼼꼼하게 분석하고, 설명한 이 책은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 아이세움의 청소년 고전시리즈로 낸 책으로써는 청소년들이 이해하기에 좀 어려운 낱말이나 서술들이 간간이 보여 좀 더 쉬운 글쓰기였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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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기본 자음자 17자의 가획에 따른 배치도 ©김슬옹 | 하지만, 그런 옥에 티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책의 훌륭함을 되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영국의 역사학자 존 맨(John Man)이 “훈민정음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극찬한 것을 왜 그런지 구체적으로 밝혀준 때문이다. 이제 한국인이면, 한국의 청소년이면 이 책을 읽고 한국인임을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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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임금은 나의 영원한 스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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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의 지은이 김슬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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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을 하는 저자 김슬옹 |
ⓒ김영조 | 지은이 김슬옹 박사는 훈민정음을 오래 연구한 전문가이다. 그래서 그동안 훈민정음에 대해 궁금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질문해 보았다.
- 학사, 박사 논문이 모두 ‘훈민정음’과 관련이 있고, 지금의 책도 훈민정음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훈민정음에 매달리는 까닭이 무엇인가?
“한글이 과학적이고 우수하다고 하면서 왜 한자에 의존한 글자살이(국한문 혼용체)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훈민정음에 대한 관심이 출발했다. 입말투 글말(구어체 한글)의 전통과 뜻 - 한글문화의 해적이스런 뜻(역사적 의미)”를 학사학위 논문으로 썼으며,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관련 기사를 통해본 문자생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점점 훈민정음에 빠져 들었다. 또 세종임금의 백성 사랑과 천재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절대권력자이면서도 세계 최고의 글자를 만들어 백성을 문맹에서 구하고,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한 세종임금은 나의 영원한 스승이다.”
- 한 학자는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의 프로젝트를 위해 지성사대를 했다고 한다. 이를 수긍하는가? 또 그동안의 연구과정에서 훈민정음 창제 뒤 명의 반응에 대한 기록을 본 적이 없는가?
“지성사대, 그랬을 것이다. 세종은 국내 사대주의자들의 반발이 쉽게 일어나지 않도록 왕자와 공주의 도움만으로 비밀 프로젝트를 시행했으며, 반포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제도적 노력을 한 전략가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명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명의 무리한 요구도 받아들이는 등 치밀한 전략으로 임했다는 것은 충분히 수긍이 된다.
훈민정음에 대한 명의 반응은 아직 찾을 수 없었다. 나도 아직 그것이 궁금하다. 어쩌면 명은 다른 오랑캐 문자들에 그랬듯이 무시했을 수도 있고, 세종의 실리외교가 빛을 발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주류문자로 반포했다면 문제가 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중국 상해대 교수에게 장영실 등이 중국에 1년간 유학을 간 데 대해 중국 측 기록이 없는지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
- 세종은 절대음감의 소유자였기에 최고의 글자 훈민정음을 창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일까?
“세종실록 59권, 1433년 1월 1일의 기록에는 세종이 박연에게 모든 악기의 기본음 곧 황종음을 내는 세로 관대인 황종율관을 새로 만들어 설날 아침 회례음악에 연주하게 했다. 그런데 연주를 마치자 세종은 동양음악 십이율(十二律) 가운데 아홉째 음인 이칙(夷則) 하나가 다른 소리가 난다고 지적했다. 이런 절대음감은 사람의 목소리도 정확하게 분석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기에 이는 훈민정음 창제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세종은 오늘날처럼 음성을 관찰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방사선 기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닿소리는 발음 나는 작용이나 발음기관의 생김새를 정확히 본떠 만든 천재이다. 현대 음성과학 쪽에서 훈민정음을 연구해온 한태동, 김석연 선생은 이를 분명히 확인해주고 있다.”
- 최만리 등은 상소를 올리며, 훈민정음을 반대했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훈민정음과 관련된 문헌이 극히 적은 상태에서 창제과정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한 공로자라는 생각도 드는데 어떤가?
“정말 아이러니 하다. 하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최만리는 상소에서 세종이 초정으로 안질을 고치기 위해 가면서 다른 모든 정사는 신하들에게 맡겼지만 훈민정음 창제 관련한 것들은 모두 가지고 갔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기록이 없었더라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를 일생 최고의 목표로 삼았음과 백성을 끔찍이 사랑했음을 쉽게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최만리의 상소문을 보면 “이렇게 되면 수십 년 후에는 한자를 아는 자가 반드시 적어져서, 비록 언문으로써 능히 사무를 본다 할지라도 성현의 글을 알지 못하고 배우지 않아 무식쟁이 되어 세상 이치의 옳고 그름에 어두울 것이오니, 언문에만 능숙한들 장차 무엇에 쓸 것이옵니까. 우리나라에서 오래 쌓아 내려온 학문을 숭상하는 교화가 점차로 몽땅 없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라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논리는 지금도 한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한자는 없앨 수도, 없애서도 안 되는 글자이다. 옛 고전이나 역사, 어학 등은 한자로 된 것이 많아서 한자를 공부하지 않는다면 이를 연구할 수가 없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는 쉬운 한글만으로 얼마든지 소통할 수가 있으니 쓸데없이 한자를 쓰지 말자는 것이다.”
- 훈민정음 창제의 목적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
“물론 훈민정음 창제에는 우선 백성이 쉽게 문자 생활을 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의 목적은 한두 가지로 말할 수 없다. 정치적으론 백성의 교화와 왕조의 정당성, 언어적으로는 한자ㆍ이두의 불편 해소, 한자 표준 등을 겨냥한 다목적용이다. 그런데 그동안 한글학자들은 근본주의, 이숭녕 등은 한자표준에만 집착했다.
이렇게 한쪽만을 강조해서는 안 되며, 역사적 맥락에서 총체적 규명을 해야 한다. 훈민정음의 목적은 그 어느 것이든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다. 지금 통합학문이 뜨고 있지만 세종은 이미 통합학문을 이끌고 있었다.”
지은이는 훈민정음의 전문가답게 거침없이 답변을 했고, 열린 자세로 임했다. 정체성도 분명했지만, 한 분야만 고집하는 것이 아닌 통합학문의 길을 걷고 있음도 보여줬다. 주변에선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논술강사로 불린다고 귀띔해줬는데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 김영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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