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페스토★주민소환

영역별 주민소환제

말글 2008. 1. 11. 22:21

주민소환제

경기도 하남시가 광역화장장을 유치하려다 시민들의 반대에 부닥쳤다. 김황식 하남시장은 이번 사태로 올해 5월 주민소환제가 도입된 후 처음으로 주민소환투표 청구 대상이 됐다.[중앙 포토]
역사 … 아테네 ‘도편 추방제’에서 유래

 주민소환제는 역사적 유래가 깊은 직접민주제의 하나다. 서양은 기원전(BC) 6세기 잘못을 저지른 공직자 이름을 도자기 조각에 써 투표했던 고대 아테네의 ‘도편(陶片)추방제’에서 그 출발점을 찾는다. 이후 BC 133년 로마에서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에 반대하는 호민관 옥타비우스가 시민투표에 의해 해임되기도 했다. 동양은 ‘아무리 군주라 하더라도 민의를 배반한 통치자는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역성(易姓) 혁명론이 출발이다. 우리나라의 다산 정약용도 저서 ‘탕론’에서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현재 민주주의를 잘 운영하는 선진국 대부분은 오랜 역사의 주민소환제를 갖고 있다. 직접 민주제가 발달한 스위스는 물론이고, 영국·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들은 모두 공직자에 대한 주민소환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를 적절히 활용해 독재와 부패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03년 캘리포니아 주가 최초로 주민소환제를 채택했다. 주민소환투표로 쫓겨난 주지사로는 2003년 10월 7일 해직된 캘리포니아 주의 데이비스 지사가 유명하다. 그는 방대한 재정적자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때, 주민투표와 동시에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지사로 당선됐다.

 일본도 주민에게 지방의회 해산청구,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해직청구, 주요 공무원 해직청구 등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1947년 이후 현재까지 약 200여 건의 해직청구가 이뤄졌는데, 그중 80여 건이 해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오늘날 주민소환제가 시행되는 각국 사례를 보더라도 주민소환제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 온 제도임을 알 수 있다. 주민소환제가 실시되면 상당한 정치적·행정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나, 실제로 큰 문제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대로 ‘대의제 보완의 마지막 수단’이란 중요한 역할을 주민소환제는 담당해 왔다. 이처럼 주민소환제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제도로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최후의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최우용 교수(동아대 법학)
 
 ☞생각 플러스:정보화가 대의제 민주제의 결점을 보완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사례로 설명하라.



행정 … 간접 민주주의 결함 보완할 장치

 2007년 5월 주민소환제 도입 이래 경기 하남시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구체적인 주민소환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주민소환제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이 주민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을 저지를 경우 주민투표를 거쳐 퇴출시킬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권자의 일정 비율(10~20%) 이상 서명을 받은 주민소환 청구에 대해 투표를 공고하게 되면 소환 대상자(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권한은 바로 정지된다. 투표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참여한 주민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면 그 직을 상실한다. 여기서 주민 소환의 명분은 부정부패에서 외유성 국외출장까지 다양하며 사실상 제한은 없다.

 이 같은 주민소환은 대의제를 보완하는 장치다. 즉 주민소환제는 주민투표·주민발의·주민감사 청구제와 함께 직접민주주의의 대표적 제도다.
 대의제는 지난 2세기 동안 인류가 고안한 가장 훌륭한 정치제도 가운데 하나로 발전해 왔다. 대의정치체제는 선거를 통한 평등한 권력분배라는 정당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많은 장점을 지닌다. 더불어 대의제는 소수자의 인권을 배척하고 그들의 의견과 비판을 무시하는 ‘다수의 전제(tyranny of majority)’ 를 방지하는 제도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대의제는 더불어 대표성·책임성의 한계와 시민 참여 제약, 심의 부족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닌 것으로 지적받아 왔다.
 오늘날 세계적 보편 현상이 되고 있는 주민소환제는 간접민주주의의 이런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직접민주제의 하나로 주민소환은 선출직 공직자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효용성을 갖는다. 그러나 주민소환제가 기피시설 반대 수단으로 오용되는 것과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책사업 유치와 관련된 사안 등은 주민소환이 아닌 주민투표를 적용토록 하는 등 제도 보완과 아울러 성숙한 주민의식의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종수 교수(한성대·행정학)
 
 ☞생각 플러스:직접 민주제는 대의제 민주제보다 항상 우월한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라.


정치 … 선출직 공직자 부패·전횡 견제

 주민소환제는 도입 자체만으로도 선출직 공직자의 부패와 직무유기, 직권 남용,독단과 전횡을 심리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주민소환제가 잘못 운영되거나 악용될 경우 행정력과 예산을 낭비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지역주민이 선호하지 않는 다른 국책사업과 광역 공공사업 등을 소신 있게 추진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더욱이 선출직 공직자가 경쟁자와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음모를 개입시키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에 빠지면 주민소환제는 채택 의도와는 달리 민주발전에 역행할 수도 있다.

 여기서 포퓰리즘이란 대중주의라고도 하며 일반 대중을 정치의 전면에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즉 공직 출마자가 선거를 치를 때 인기를 위해 유권자들에게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경우 등이다.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대중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을 들 수 있다. 당시 페론 정권은 노동자와 빈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제논리를 벗어나 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빈민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기업들은 고임금을 감당할 수 없어 외국으로 떠나고 실업자가 폭증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는 처지로 전락했다.

 주민소환제는 이 같은 포퓰리즘적 행정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정치 지도자에 대해 형사적 책임이 아닌 정치적 책임 추궁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공직자는 주민 소환을 우려하거나 인기를 얻기 위해 국가발전이나 행정목표보다 주민의 이익이나 의사만을 우선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주민 소환의 구체적 사유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소환의 사유를 제한하면 실질적 유권자 심판의 성격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 사유를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시행 이후 한 달 사이 전국 10여 곳에서 거론되는 등 주민소환이 남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상호 대표(한국정치발전연구소)
 
☞생각 플러스:주민소환제의 남용을 막기 위해 필요한 보완장치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라.


사회 … 혐오시설 막는 데 악용될 가능성

 지역주의는 국가 발전에 장애 요소다. 사람들은 혐오 시설이 자신의 거주 지역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 반면 이익이 될 만한 것은 가져가려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당장의 이익을 위해 되돌릴 수 없는 막대한 자연 훼손을 가져올 거대한 개발 사업을 강행하기도 한다. 또, 지역 이기주의를 부추겨 불가피한 국가적 사업을 가로막는 사례도 있다.

 지방 자치 단체마다 쓰레기 매립장이 다 차서 새로운 매립장을 마련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민들 모두가 내 집 뒷마당에는 안 된다고 하는 님비 현상(NIMBY:Not in my back yard) 때문에 전국의 산하는 쓰레기로 더럽혀지고 있다. 핵폐기물은 어떠한가? 늘어만 가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건설한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어떤 식으로든지 처리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는 장기적으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은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핵폐기물 처리장이 자기 지역에 오는 것에 찬성하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이와 관련, ○○시는 오는 2012년이면 광역권 폐기물 매립장이 포화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소각장 설치를 서두르고 있으나 주민의 반대로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각 지자체는 지역에 유리한 사업은 서로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다. 예를 들어 정부기관이나 청사를 자신의 지역에 유치하려는 경우나, 2002년 월드컵 축구장 유치를 들 수 있다. 이 밖에 호남고속철도 노선을 놓고 대전시와 충청남도가 대립한 것과 삼성의 자동차 공장 유치를 기대했던 대구 시민들이 부산으로 결정되자 삼성 제품 불매 운동에 들어갔던 것도 대표적 예다. 님비와 반대인 이런 현상을 전문가들은 핌피 현상(PIMFY:Please, in my front yard)으로 부른다.

 앞으로 혐오시설을 막지 못하거나 유리한 사업을 유치하지 못한 지자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빈번해지면서 지역주의가 더 심각해 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