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서울=뉴시스】 13일 오후 김귀환 제7대 서울시의회 후반기 의장이 선거 전 금품살포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종로경찰서로 입감되기위해 경찰청을 나오고 있다. /전진환 기자 amin2@newsis.com | | |
【서울=뉴시스】
최근 불거진 서울시의회 금품수수 의혹 사건으로 지방의회의 폐단이 또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지방의회가 제 기능을 다 못하고 있는 것은 중앙정치가 지방의회를 장악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정당공천제 때문이라는 정치권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5년 8월 개정된 현행 공직선거법은 중앙정당이 지방의회 후보자를 공천하도록 하는 이른바 '정당공천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당이 지방의회의 후보자를 선출하는데 적극 개입함으로써 지방의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받고 있다는 것이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지방의회 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어 지역을 위해 소신있는 정책을 펴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또 다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감시자 역할보다는 당의 거수기 역할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정당 줄대기, 공천 헌금, 금품 거래 등 공천을 둘러싼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 요소 중 하나다.
이같은 문제점은 전국 대부분의 시도의회를 한나라당이, 전남북과 광주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5.31 지방선거로 탄생한 민선 4기 지방의회는, 전국의 16개 시·도 광역의회 중 전남·북과 광주를 제외한 13개 시·도의회를 한나라당이 '장악'했다.
금품수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서울시의회의 경우 106명의 시의원 중 100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며,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도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전체의석 84석(대구 29석, 경북 55석) 중 75석(대구 27석, 경북 48석)을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의회 역시 41명 중 21명이 한나라당이다.
부산시의회는 47명의 의원 중 41명이 한나라당이고, 대전시의회는 19명 중 16명이 한나라당이다. 충북도의회도 64명 중 61명이, 경기도의회도 118명 중 104명이 한나라당이다.
이 때문에 의장단·상임위원장단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는 한나라당의 내부 경선은 사실상 본선이나 다름없는 상황으로, 당 내에서도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기 일쑤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를 견제하고 지역주민들의 이익을 보호해야할 지방의회 의원들이 사실상 당내 역학관계를 염두에 둔 채 소속 정당의 이익을 앞세우고,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때마다 당 지지율을 높이고 당 후보들의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시의원 대부분은 시정질문 중 시민들의 입장에서 시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한나라당의 후보로 당선된 오세훈 시장의 치적을 칭찬하기에 바쁜 민망한 모습을 자주 보여 시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지방의회 공천권을 거머쥔 현역 국회의원 역시 정당공천제의 폐단을 잘 알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시정하기보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방의회의원을 통해 지역을 관리하며 재선을 위한 터전을 닦을 수 있기 때문으로 지난 18대 총선에서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이 해당 지역 국회의원의 무급 선거운동원을 자처하고 이들의 득표전의 최전선에서 뛰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대구 경북지역의 경우 10여년이 넘게 한나라당 '천하'이다 보니 한나라당을 통하지 않고는 정계 입문조차 쉽지 않으며, 이에 따라 출발부터가 능력에 의한 경쟁이 아니라 얼마나 확실한 줄을 잡고 있느냐가 관건이었다는 당직자들의 비판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의원들은 당의 공천만 잘 받으면 당선이 100% 보장된다는 인식때문에 주민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등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투명성과 전문성을 판단의 잣대로 삼아야할 후보 선택의 기준이 왜곡되고, 함량미달의 인물이 당선돼 지방의회의 저급화를 초래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것.
뿐만 아니라 원천적으로 실천 불가능한 허황된공약 남발로 당선된 후보가 재선되거나, 중앙당의 입김이 시군구 의회까지 작용해 지방의회가 지역구 국회의원의 사조직화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공직선거법의 맹점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비리를 저질러 사법기관에 구속되거나 입건된 상당수 지방의회 의원들이 의정비는 꼬박꼬박 받아챙기고 의원직 사퇴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해도 소속 정당의 비호를 받는 이들 비리의원들을 사퇴시키거나 제명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의장선거 운동 과정에서 금품을 주고받은 김귀환 의장과 시의원 30여명에게 이달치 의정비 567만원씩을 지급했으며, 구속 상태인 김 의장에게는 업무추진비 560만원까지 지급된 것으로 시의회는 지난 23일 확인했다.
서울시의회는 ‘지방의회 의원신분을 유지하는 한 보수를 지급한다’는 지방자치법 규정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게 됐다며, 지방의원들이 ‘의원직 상실형’에 준하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더라도 의회에 판결이 통고되기 직전까지는 계속 보수를 받도록 하는 반면 지자체장은 구속 등으로 업무가 정지되면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 40%의 보수만 받도록 하는 규정을 제시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관련법을 바꿔서라도 비리의원에 대해서는 의정비를 지급하지 말아야 하며, 비리 의원들을 제명하고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하향식 공천으로 끊임없는 잡음과 부작용을 양산하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정당공천제도 폐지론이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자유선진당 이명수(충남 아산) 의원은 지난달 4일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민주당 김종률(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의원도 기초자치단체장 및 기초의원의 정당 추천제 폐지와 정당의 후보자 지원·지지 금지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민주당 이시종(충북 충주) 의원은 최근 국회 지방자치연구포럼 창립총회를 설립하고 같은 당 우제창(경기 용인) 의원 등과 함께 기초단체장.의원 공천제의 폐해에 대한 공론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앙당의 입김이 시군구 의회까지 뻗친다는 지적과 함께 국회의원의 지역 사조직화, 공천비리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 등 여야 의원 42명은 지난 2006년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했다. 이들 의원은 가칭 ‘기초자치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의원 모임 준비위원회’를 결성해 정당공천제 폐지 주장을 폈지만 정당들의 반발로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법안도 여러 건 발의됐다. 이상배, 김재원, 이재오, 김덕룡, 정장선, 심재덕, 이상민, 김혁규, 이시종 의원 등 총 9명의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막강한 지방의회 권력을 보유한 중앙정당들의 반발과 무관심으로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이시종 의원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정당공천이 되면 우선 정당의 지시에 의해 지방의원들이 움직이니까 결국 정당정치가 지방의회를 장악하게 되는 셈"이라며 "지방자치 시행 전에는 중앙정부가 장악하다가 정당공천제 이후에는 중앙당이 지방의회를 장악하게 되는 것으로 지방의회의 장악 주체만 바뀌었을 뿐이어서 지방자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정당공천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의원은 또 "지방의회 공천과 관련된 각종 비리와 잡음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며 "서울시 의회 사건도 크게 보면 정당공천제의 폐해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연인으로 볼 때 A후보가 후보자로 가장 적절한데도 현행 제도는 중앙당과 교감이 두터운 B나 C후보가 정당 바람에 의해 당선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국민의 건전한 선택권을 빼앗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며 "주민들의 판단과 관계없이 중앙당의 판단에 따라 후보자가 결정돼 폐해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본적으로는 기초자치단체는 생활정치, 생활행정이 중심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등 정당의 시각에 따라 정책이 바뀌지는 않는다"며 "행정은 정당의 전략이나 이념에 종속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지방의회의 경우 정당공천제도를 시급히 배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명수 의원도 "정당공천제는 장점보다 폐해가 더 많다"며 "중앙정치가 지방정치에 그대로 연결이 돼서 지방기초단위 자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미국, 일본 등 선진 외국의 경우에도 지방의회는 생활자치라고 해서 정당 공천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당공천제를 존치시킬 경우 중앙당의 정책 기조가 그대로 지방의회를 움직이게 하기 때문에 독립성이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당공천제는 법 개정 당시 각 정당들이 특정지역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한 잘못된 수단으로 도입한 측면이 강하다"며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은 정당을 떠나서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하지만, 당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당 부분을 제약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달 4일 ▲기초자치단제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배제 ▲기초의원 선거구를 소선거구제로 변경 ▲당적 보유자의 의회 선거 출마 금지 ▲투표 마감시간 8시로 연장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는 정당이 개입할 수 없도록 처음부터 위험요소를 제거하자는 취지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뿐 아니라 당적보유자가 출마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우제창 의원도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현행 공직선거법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의원선거에 정당공천제를 규정하여 지방의 중앙정치예속, 공천 잡음, 고비용 선거구조 등 지방자치 발전을 크게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기초자치단체의 장, 의원선거 정당공천제에 대해 국민들의 70-80%이상이 반대한다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고, 이러한 여론은 2007년 4월 보궐선거에서 상당수의 무소속 의원이 당선되는 국민들의 심판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의원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제를 폐지하고, 정당의 후보자지원. 지지를 조속히 금지해야 한다"며 "정당공천제가 폐지될 경우 자동폐지되는 기초의원 정당비례대표제를 대신해 여성선거구제를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기춘 의원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사람은 다음 공천을 위해서라도 소속정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기 때문에 정당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공천권을 갖게 되면 지방자치제도의 핵심인'자치'가 훼손될 수 밖에 없다"며 현행 정당공천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의원은 "어떤 정책이나 사업이 지역의 이익과 발전에 보탬이 된다고 해도 소속정당의 뜻과 어긋나면 반대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의 손해로 직결될 수 있다"며 지역을 위해 소신있는 정책을 펴는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면 후보자들은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한 정책개발보다는 정당 줄대기에 열을 올리면서 공천헌금과 같은 금품거래를 시도하게 된다"며 "공천비리는 함량미달의 인물을 당선시킬 수 있다는 위험 외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김성현기자 seankim@news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