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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의 '거짓' 답변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생겼다. 지난 21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나라당 경선 TV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1991년 2월 이라크 전쟁 때 다른 나라들은 위험해서 다 철수시켰는데 현대는 그렇지 않았지요?"라고 묻자 이명박 후보는 "그 때 회장인 내가 들어가서 다 안전하게 피신시켰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가 지난 1991년 걸프전쟁 당시 이라크현장에 직접 들어가 직원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킨 적이 없으며, 본사에서도 명확한 철수지침을 내리지 않아 직원들이 피신하는 데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증언이 나와 이 후보의 답변을 둘러싸고 '거짓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걸프전쟁은 지난 1991년 1월 17일부터 2월 28일까지 미국·영국·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이다. 당시 현대건설은 이라크 알무사이부발전소 등 5~6곳에 현장을 두고 있었다. 이명박 후보는 1977년에 현대건설 사장에 올라 1988년부터 1992년까지 현대건설 회장으로 일했다. 걸프전쟁 당시 현대건설은 해외수주실적 국내 1~2위를 다투던 건설사였다. 당시 현장 근로자의 증언 "이명박 회장은 이라크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난 2001년 현대건설을 퇴사한 김아무개씨는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던 이명박 후보가 이라크 현장에 들어와 직원들을 피신시킨 적은 결코 없었다"며 "정훈목 사장만이 전쟁이 일어나기 한두 달 전에 와서 직원들을 위로해주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지난 1987년부터 걸프전쟁이 일어나던 1991년까지 현대건설의 상하수도현장이 있던 키르쿠크에서 전기분야 책임자로 일했다. "우리는 본사에서 철수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해) 1990년 12월말까지 대부분의 근로자들을 철수시켰다. 이후 각 부분별로 최소인원이 남아 전쟁에 대비해 현장자재를 숨기고 전자제품 등 주요 기기를 격리 보관하는 일을 수행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3일 전인 1991년 1월 13일 바그다드로 이동해 여기서 택시를 타고 약 1000㎞를 달려 요르단 암만을 경유해 무사히 귀국했다." 그는 "혹시 이명박 후보가 미군이 주둔해 있던 사우디아라비아 등에는 왔다갔는지 모르겠지만, 이라크에 들어온 적은 없다"고 거듭 확인한 뒤, "이명박 후보가 (21일) 토론회에서 무슨 낯으로 그렇게 얘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당시 출입국 기록을 살펴보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씨는 "1990년 9월께부터 각 현장은 근로자들의 동요와 불안감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며 "유럽에서 온 사람들과 국내의 몇몇 건설회사들도 모두 철수했지만 현대건설만은 본사에서 철수하라는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 현장 근무자들이 (다른 나라로 피신하려면) 출국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발주처에서 서포팅 레터(supporting letter)를 써주기 않아 직원들이 이라크를 빠져 나오는 데 문제가 있었다"며 "현대건설 본사 차원에서 (철수에 대한) 확실한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발주처에서 서포팅 레터를 써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는 "본사에서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현장을 지키고 있는데 본사에서 '현장 소장들이 판단해 철수하든 남든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며 "이렇게 되면 무섭다고 현장을 접고 짐을 싸서 나갈 소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와 관련, 그는 "왜냐하면 '빙신 같은 놈' 소리를 들으며 옷을 벗게 되거나 부임해야 할 현장이 없어 본사에 대기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본사에서 직원들의 생명이 중요했다면 '다 들어와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것을 현장소장들의 판단에 맡기게 한 것은 현대건설이 직원들의 목숨을 경원시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김씨는 "제가 일하던 현장의 근로자들 중 3~4명은 귀국치 않고 계속 현장에 남아 있다가 전쟁 발발 후 현장에 들어와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물품을 약탈해가는 현지인들을 천장 속에 숨어서 사시나무 떨듯 하며 보기도 했다"며 "후에 우호적인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시리아를 거쳐 어렵게 귀국했던 상황을 나중에 들으면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전쟁피해 복구사업에 참가하기 위해 잔류 종용" 의혹
먼저 현대건설이 이라크 현장 근로자들에게 철수명령을 내린 것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날인 1월 16일(1991년)이었다. 이는 노동부의 긴급지시조차 무시한 조치였다. 노동부는 전쟁 발발에 대비해 이라크에 현장을 두고 있는 현대건설·삼성종합건설 등 4개 건설사 소속 근로자들(110명)을 1월 15일까지 철수시키라고 해당업체에 긴급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최봉름 주이라크대사조차 1991년 1월 15일 요르단 암만 국제공항에서 <서울신문> 기자를 만나 "50명 이상 잔류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현대측에서 상당히 고심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전쟁상황이 악화되고서야 현대건설이 전면철수를 검토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또한 걸프전쟁 발발 이후에도 20여명의 현대건설 근로자들이 이라크를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을 둘러싸고 의혹이 일기도 했다. 최봉름 대사는 1991년 1월 15일 오전 요르단에 도착해 기자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다. "공사현장을 지키기 위해 남은 것 같다. 지난해 8월 현대건설은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쿠웨이트에서 전원 철수시켰으나 그로부터 한 달 뒤 그 곳에 진주한 이라크군이 현장의 건설자재 장비 등을 훔쳐가 버렸다. 현대로서는 이번에 당시 손실을 고려했을 것이다." 실제 일부 근로자들은 "현대건설이 공사대금으로 받은 어음이 부도날 것에 대비해 전쟁이 끝난 뒤 공사수주에서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현지 근로자들에게 잔류를 종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건설부와 노동부는 정훈목 현대건설 사장 등을 불러 진상을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1991년 1월 22일자 <한겨레>도 "현대건설 직원 및 근로자 22명은 걸프전쟁 발발 5일째인 21일까지도 왜 이라크 전장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가"라고 물은 뒤 "이를 두고 관련업계 일각에서는 현대건설이 전쟁피해 복구사업에 먼저 참가하기 위해 일부러 일부 직원을 남겨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고 전했다. 또 현대건설은 국회건설위원회 소속 의원들로부터 "이라크에 진출해 있는 다른 건설업체들은 모두 직원을 철수시켰는데 현대건설은 채권확보를 위해 노동자들을 일부러 현지에 남겨둔 게 아니냐"는 추궁을 받았다. 이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근무 현대건설 직원들은 귀국 후 "회사측이 방독면 지급 등 안전대책도 없이 현장에 잔류시키고 작업을 강요했다"며 "귀국하는 근로자에게는 사표제출과 항공료 자비부담을 요구하면서 출국서류발급 등에 협조해 주지 않았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심지어 현대건설은 걸프전쟁이 발발하기 전 휴가차 귀국한 직원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 복귀를 종용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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