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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이 덥수룩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행사장을 가로질러 내빈석으로 들어갔다. 손 전 지사는 먼저 와 있던 김한길 의원을 비롯해 통합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열린우리당 탈당그룹 대통합추진모임을 이끌고 있는 정대철 전 의원도 시민사회 진영의 미래창조연대측 오충일 목사 등과 잇따라 인사를 나눴다. 이어 이날 오전 통합민주당을 탈당한 신중식·채일병 의원 등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이날 오전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송영길·서갑원 의원 등도 다른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분주했다. 내빈석에서의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달리 무대 위에서는 퓨전국악 그룹 '이스터녹스'의 마지막 연주 '초원의 야생마'가 한창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들과 '이스터녹스' 사이를 가로막은 수십 명의 취재진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사회를 맡은 이낙연 의원이 무대에 올라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가칭) 창당준비위원회 발족식 시작을 알렸다. 이 의원도 이날 오전 통합민주당을 탈당했다. 내빈석 뒤편으로 400여명의 참석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이날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 창준위 발족식으로 이른바 범여권에서 추진해온 제3지대 대통합신당 창당 절차는 첫 발을 내딛게 됐다. 정대화 미래창조연대 대변인은 "당초 당명이 '미래창조대통합신당'이었는데, (통합민주당 탈당파측 요구로) '민주'를 추가해서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기찻길 이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기찻길처럼 당명이 길다는 것이다. 참여하고 있는 제정파가 모두 입을 모아 '기득권을 버리자'고 했지만 "아직 기찻길 이름에는 (내 것을) 챙기는 모습이 들어"(한명숙 전 총리)있는 셈이다. 짜여진 각본에 따라 명칭, 발족선언문, 규약 등이 통과됐고, 창당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도 선출했다. 오충일 목사, 김상희 지속가능발전위원장, 김호진 전 노동부 장관 등 시민사회세력측 3인과 정대철 대통합추진모임 대표, 통합민주당을 탈당한 정균환 전 의원, 김한길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등 정치권 3인이 함께하는 집단운영체제다. 기존 정치권과 시민사회세력이 1 대 1로 참여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역시 '지분 나눠 갖기'라는 지적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당초 공동위원장은 정치권 4명, 시민사회세력 4명 등 모두 8명으로 구성할 예정이었다. 그나마 손학규 전 지사측 선진평화연대에서 자신의 몫을 포기하는 바람에 시민사회세력 몫과 함께 2명이 줄었다. 이날 채택된 결성선언문에서 "어떤 기득권도 없는 제3지대에서 선진 대한민국으로 가는 융합의 에너지를 창조하는 대통합의 용광로가 되겠다"며 "뜻을 같이하는 모든 국민과 정치세력,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이 작은 차이를 넘어 대통합의 대열에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한다"고 밝힌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해관계 다른 제 세력에 대해 '나눠 갖기'식으로 구성된 집단지도체제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한 향후 시·도당 조직 및 당직 구성 과정에서 제 세력간 주도권 다툼 및 지분 싸움이 첨예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게다가 이날 발족식에선 열린우리당이 제외된 데다가,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을 반대하고 있는 통합민주당측에서도 합류를 거부하고 있어, 향후 창준위가 이들과 어떤 식으로 협상에 나설지 주목된다.
일단 창준위에는 기존 열린우리당 탈당그룹 45명(대통합추진모임 44명+천정배 의원)과 이날 탈당한 추가 그룹 15명, 통합민주당 대통합 탈당파 4명이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통합민주당 당적을 유지한 채 합류하고 있는 김한길 의원 등 과거 중도통합신당 소속 의원 20명을 포함하면 전체 현역의원 숫자는 84명에 이른다. 순식간에 열린우리당을 제치고, 원내 2당으로 부상한 것이다. 또 25일께 호남지역 광역단체장들과 함께 탈당할 것으로 알려진 김홍업 통합민주당 의원까지 합류할 경우 전체 의석수는 85석으로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 열린우리당'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84명의 현역 의원 중 김효석·신중식·이낙연·채일병 의원 등 민주당 출신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이 모두 열린우리당 출신이기 때문이다. 참신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향후 참여정부 및 열린우리당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그나마 중앙위원과 전체 발기인 구성에서 시민사회세력의 몫을 보장함으로써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부담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노렸다. 300명까지 충원할 수 있는 중앙위원에는 현역 의원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학계·변호사·시민운동가 등이 포함된 시민사회세력이 각각 50%씩 참여해 163명을 구성했다. 또한 정치권의 발기인 중에는 통합민주당을 탈당한 김효석·이낙연·신중식·채일병 의원 등 현역의원 47명 외에도 민주당 출신인 박준영 전남지사, 박광태 광주시장, 김완주 전북지사 등 광역자치단체장과 설훈·심재권·배기운 전 의원 등이 포함돼 있다. 또한 김유식 선진평화연대 공동대표와 손학규 캠프의 배종호 대변인도 참여하고 있다.
이날 발족식에는 김두관·김혁규·손학규·정동영·천정배·한명숙 등 범여권 대선 예비주자들이 참석해 '불안한 동거'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다.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과 김혁규 의원, 한명숙 전 총리는 정권 재창출을 통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성과를 계승하는 '3기 민주정부 수립'을 강조한 반면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통합민주당의 합류를, 천정배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해체를 촉구했다. 손학규 전 지사 역시 자신이 강조하고 있는 '국민대통합'에 방점을 찍으며 타 후보들과 차별화에 나섰다. 이해찬 전 총리는 지방 일정으로 이유로 이날 발족식에 불참한 채 축하 메시지만 전해왔다. 실제 축사에 나선 천정배 의원과 한명숙 전 총리는 상대방을 견제하는 '뼈 있는' 설전을 펼쳐, 행사 마지막에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천정배 의원은 "일각에서 '열린우리당이 뭘 잘못했냐, 잘못한 것 없다'며 당 대 당 통합을 하자는 사람이 있다"며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저를 포함해 열린우리당, 참여정부는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에 대해 반성하고 새출발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친노 그룹을 겨냥했다. 반면 뒤이어 축사에 나선 한명숙 의원은 "남에게 손가락질하고 '네가 잘못한 것 아니냐' 할 것 아니라 그 손가락질을 나에게 돌려야 한다"며 "'내가 잘못했다. 우리 모두가 잘못했다'고 해야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한 의원은 또 "아직 기찻길 이름(당명)에는 (내 것을) 챙기는 모습이 들어있다"며 "용광로 속에 욕심, 이해관계, 분노 등 모든 것을 버리고 녹여내서 새로운 감동을 만들 때, 국민들은 우리를 믿고 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창준위는 이날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으로서 사회양극화 완화 ▲건강한 경제정의구현 ▲지역주의 배격과 전국정당 지향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달성 ▲햇볕정책 계승을 기치로 내걸었다. 창준위는 내달 4일까지 전국 16개 시·도당 창당 절차를 거친 뒤 5일 올림픽공원내 올림픽홀에서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대통합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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