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새 대통령 향한 정신대 할머니의 일성(오마이뉴스)

말글 2008. 2. 28. 01:26

"내 인생, 네가 살았냐"
새 대통령 향한 정신대 할머니의 일성
여성연합, '올해의 여성운동상' 및 성평등 디딤돌·걸림돌 선정
이민정 (wieimmer98)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통과한 가운데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회원과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 당국의 결의안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일본군위안부

"15살 어느 날 밤에 대만의 가미가제 부대에 (위안부로) 끌려갔다.…과거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왔고, 산 증인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나라의 지도자가 사죄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냐. 건방진 소리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상임대표 윤미향·이하 정대협) 소속 이용수(81) 할머니는 지난 25일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이 대통령을 향해 "네가 나냐, 내 인생을 네가 살아주는 것이냐"며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대한민국의 딸'인 나를 대신해 일본에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 부모가 와서 '사죄받지 않겠다'고 해도 나는 용서하지 못 한다"고 못박았다.

 

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일본 자민당 가토 고이치 전 간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오늘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며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는 한일 관계를 강조한 것에 대한 정대협의 불쾌감이다.

 

이 할머니가 소속된 정대협은 한국여성단체연합(상임대표 남윤인순·이하 여성연합)이 수여하는 제2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이 할머니는 2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내 레이첼칼슨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하다가 새 정부의 대일관에 대한 견해를 묻자 표정을 달리 했다. 그는 "대통령이 앞장서서 일본의 사죄를 받아야 한다"며 "일본 정부는 반드시 법적인 책임을 지고 사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 또한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거나 '과거사를 붙잡고 있으면 불행하다'는 식의 발언은 몰역사적 발언"이라며 "일본과의 미래를 운운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무시하고 있지만, 정신대 문제는 살아있는 현재"라고 강조했다.

 

윤 상임대표는 "지금까지 정대협 할머니들이 수요집회 등을 통해 노력했는데 대통령이 된 자가 외교 문제를 들어 할머니들의 노력을 수포로 돌려서는 안 된다"며 "이명박 정권은 전쟁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제대로 된 정책을 앞장서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800회 넘은 수요집회... "세상에 못 나올 줄 알았는데"

 

여성연합은 이날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로 정대협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정대협은 지난 2월 13일 800번째 수요집회를 열만큼 일본의 전쟁으로 인한 여성의 피해를 공론화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성연합은 "수요집회는 평생을 피해자이면서도 죄인처럼 지냈던 피해자들을 당당한 운동의 주체자로 변화시켰다"며 "이같은 피해 여성들의 모습은 젊은 세대들에게 전쟁피해의 경험자, 여성 폭력의 피해자, 여성 평화운동가로 다가가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여성연합은 정대협에 대해 "초기에는 손가락직과 냉담한 시선을 받았던 수요집회를 16년째 이어오면서 많은 변화를 일궜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고 방관자 같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길원옥(81) 할머니는 "짓밟힌 몸으로 세상에 못 나오는 줄 알았더니 젊은이들이 나서서 수고해준 덕분에 이런 곳에서 얼굴을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게 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정대협은 지난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회를 시작한 뒤 거리 행진, 사진전 등을 통해 여론을 확산시켰다. 지난해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일본군 성노예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역사교육 등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게 하는 디딤돌이 됐다.

 

남윤인순 상임대표는 "매주 열리는 수요집회에는 평균 80여명이 참석하고 이 가운데 60% 가량을 청소년이 차지할만큼 살아있는 역사교과서이자, 평화와 인권 교육의 장"이라며 "이렇게 끈질기게 시위를 한 단체는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정대협을 선정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여성연합은 남윤 상임대표를 비롯해 9명의 심사위원회가 ▲여성 문제 중 특정 부문을 이슈화해서 여성 운동의 발전에 공헌한 점 ▲풀뿌리 여성 운동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한 점 ▲사회적 공공선에 기여한 점 등을 기준으로 개인 혹은 단체를 선정, 매년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시상하고 있다.

 

여성연합은 올해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정대협에 상패와 상금 500만원을 수여한다. 시상식은 다음달 8일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리는 3·8 여성축제 기념식 가운데 있을 예정이다.

 

 이랜드 회장·<문화일보> 편집국장,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한 박성수 이랜드 그룹 회장이 올해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됐다. 학벌 위조 의혹을 받고 있던 신정아씨의 알몸사진을 게재한 문화일보 편집국장 또한 같은 불명예를 얻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상임대표 남윤인순·이하 여성연합)은 28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내 레이첼칼슨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올해의 여성운동상 및 성평등 디딤돌 및 걸림돌을 발표했다. 여성연합은 매년 성평등 의식과 체제 구축에 도움 혹은 피해를 준 인물 및 단체를 선정, 성평등 '디딤돌'과 '걸림돌'로 각각 발표하고 있다.

 

올해 성평등 '디딤돌' 선정자에는 강제퇴역 처분에 맞서 투쟁한 피우진 중령, 노동조합 결성으로 해고된 이후 지난해 5월 전원 고용보장을 이끌어낸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들, 광주 청각장애인특수학교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원회 등이 꼽혔다.

 

반면 성평등 '걸림돌'로는 박성수 회장, <문화일보> 편집국장 등을 비롯해 지난해 군 가산점 부활안을 발의한 고조흥 한나라당 의원이 성평등에 지장을 준 인물로 지정됐다.

 

여성연합은 박 회장을 '걸림돌'로 선정한 배경에 대해 "지난해 비정규직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이랜드 및 뉴코아 유통업 계약직 노동자 1천여명을 대량해고하고, 계산직 업무를 외주화했다"며 "구사대와 용역깡패를 동원해 비정규직들의 파업과 농성을 방해하고 노조 간부들을 고소고발·해고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져버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를 철저히 묵살했다"고 밝혔다.

 

<문화일보>에 대해서는 "사건과 상관없는 알몸사진을 게재해 여성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꼬집었다. <문화>는 지난해 9월 13일자를 통해 신정아씨의 성로비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의 알몸사진을 게재했다.

 

여성연합은 "이같은 보도 행태는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심각한 수위의 여성폄하가 반영된 것"이라며 "공개사과와 책임자 징계를 요청했지만 <문화>쪽은 사과문을 게재한 뒤 편집국장이 사표를 제출했으나 곧 반려하는 등 책임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여성연합은 디딤돌 선정자에게는 상패를 전달하고, 걸림돌 선정자에게는 공문을 보내 성평등 인식 확산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낼 예정이다.

2008.02.27 17:07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