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ㆍ지자체ㆍ소방당국 모두 "잘못없다"
책임규명 못지않게 문화재 관리 제도개선 절실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진 지 10일로 꼭 한 달이 되지만 관계 당국 어디서도 책임 지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9일 문화재청과 서울 중구청, 서울 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숭례문 화재와 관련해 문화재 관리 및 진화 책임자 중 자체 징계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화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긴 했지만 실무진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며 징계가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문화재청은 잘못한 것이 없다. 절차에 따라 적절한 상황조치를 했기에 징계를 할 이유가 없었다"라며 문화재청의 책임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소방당국의 경우도 서울 중부소방서나 서울 소방재난본부 등 어디에서도 숭례문 화재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옷을 벗거나 자체 징계를 내린 사례가 없다.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경찰의 중간발표로는 소방 측에서 중대한 과실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징계위원회를 열거나 징계 절차를 밟지 않았다. 아직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숭례문을 관할하는 중구청의 경우 평상시 숭례문에 대한 안전관리 업무를 소홀히 해놓고 규정대로 근무한 것처럼 근무일지 등 공문서를 위조한 혐의로 공무원 3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그러나 중구청은 경찰이 해당 직원들을 입건할 때까지도 자체 감사나 징계를 전혀 하지 않아 업무를 태만히 하고도 자율이 아니라 사법기관에 의해 최소한의 책임만 지고 넘어가려는 게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수사가 끝나고 최종 결과를 통보받아야 징계위원회 개최 여부가 결정되지 않겠나. 내부적으로는 아직까지 책임을 묻는 과정이 없었고 경찰 수사결과에 따라 징계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라고만 말했다.
문화재청과 소방당국, 중구청의 입장은 경찰 수사로 분명한 위법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굳이 스스로의 책임이나 과실을 먼저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소극적인 태도인 셈이다.
화재 당시 상황을 기록한 소방재난본부 자료 등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문화재인 점을 감안해 화재진압에 신중을 기해달라" "숭례문이 손상돼도 상관없이 진화만 해달라" "불길이 번지지 않으면 천장을 파괴하지 말아달라"는 등 입장이 오락가락해 초기 진화에 큰 혼선을 초래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또한 문화재의 특성을 고려한 제대로 된 방재 매뉴얼이 없었다는 점과 발화 1시간30여분 만에야 숭례문 실측도면을 확보했다는 점, 평소 문화재에 대한 실전 소방훈련이 충분히 실시되지 않은 점 등은 관계 당국의 준비와 대응이 부실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불이 난 시간대는 아니지만 화재 당일 숭례문 현장 근무자가 4시간 동안이나 자리를 비운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확인됐고 근무일지 외에 소방점검일지 등 다른 서류가 조작됐다는 의혹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숭례문 소실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책임을 규명하되 단순한 `희생양 만들기'에 그치기보다는 더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에는 문화재에 대한 구체적인 소방 관련 규정이 없고 면적에 따른 대책만 규정돼 있어 숭례문은 소화기 몇 개만 비치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스프링클러나 화재감지센서설치 등을 위한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숭례문 화재와 관련한 최종 수사결과를 10일 발표한다.
이와 함께 평상시 문화재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과 해당 지자체가 긴밀한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firstcircle@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8/03/09 08:0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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