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이명박 위기 본질은 ‘정치’의 부재(한겨레신문)

말글 2007. 11. 6. 19:12
이명박 위기 본질은 ‘정치’의 부재
[성한용 선임기자의 대선읽기]
한겨레
정주영 이인제 정몽준 ‘제3당’ 실패
‘권력=나눠먹는 것’ 무시해 위기 자초
‘통치’ 배우기 전에 ‘타협’부터 배워야
 

정치에서 새로운 깃발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반드시 기존 정당에 접목해야 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무너지지 않고 있는 원칙이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9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인제 의원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각각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 실패했다. 정몽준 의원도 2002년 ‘국민통합 21’이란 정당을 만들었지만, 고비를 넘지 못했다. ‘제3후보’와 ‘제3정당’은 이렇게 모두 실패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대쪽 판사’라는 깃발로 97년과 2002년 두 차례 대선후보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새 깃발로 새천년민주당을 접수했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절반의 성공’도 ‘성공한 최고 경영자’라는 깃발을 들고 한나라당이라는 기존 정당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치는 실험이 아니다. ‘실험 정신’이 필요할 뿐이다.

이명박 후보가 맞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박근혜 전 대표가 상징하는 한나라당의 ‘기존 세력’과 타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를 싫어한다. ‘탈여의도’, ‘탈정치’를 여러 차례 말했다. 대통령 당선 뒤 당개혁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최근 “한나라당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집권 이후 신당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맥락으로 보면 진심일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후보 본인은 “자꾸 과거의 잣대로 나보고 개발독재라고 하는데, 내가 일자리를 만들 때 그 분들은 무엇을 했나 묻고 싶다. 동료들이 김영삼·김대중씨를 따라갈 때 나는 기업에 들어가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뤘다”(2005년 6월)고 말한 일이 있다. 기존 정치인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정치인들은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주로 영남에 지역적 기반을 둔 보수 세력은 ‘산업화’의 자부심을, 호남에 기반을 둔 개혁·진보 세력은 ‘민주화’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 온 ‘양대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소한 그들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

 

정치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기술이다. 권력은 나눠먹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수십년 동안 잔뼈가 굵은 사람들을 하루 아침에 ‘타도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혁명가’들만이 할 수 있다. 이명박 후보는 기껏해야 ‘개혁가’다.

 

이명박 후보의 참모가 사석에서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대형공사를 수주할 때 이름은 1등만 나간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 보면, 1등은 50%만 차지한다. 2등이 30%, 3등이 10%다. 이 관행을 어기면 업계 전체의 질서가 무너진다. 우리에게 30%는 박근혜였고, 10%는 이회창이었다. 그동안 박근혜와 이회창을 잘 ‘모시지’ 못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원인을 찾으면 ‘활로’가 나온다. 캠프 안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 출마 사태를 ‘정면돌파’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주저 앉히지 못하는 경우에도, ‘진심’을 보여주는 과정 자체가 국민들에게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쩌면 이명박 후보는 이제 겨우 정치를 배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더 있다. 정치인은 국민들에게 정직해야 한다. 이명박 후보는 5일 관훈 토론회에서도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 “(대통령)직을 걸고 책임지겠다”고 했을 뿐, ‘진상’을 소상히 밝히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shy99@hani.co.kr

 

▶이회창 돌풍, 어디로
▶“대통령직 걸고 BBK 책임”…선거전 진실 밝혀야
▶“이회창, 내일 오후 2시 대선 출마 선언
▶‘정치인’ 박근혜의 선택
▶이회창 출마명분 허점 어떻게 메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