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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만 수업' 2년 만에 어떻게...(중앙일보)

말글 2008. 1. 25. 13:23

‘영어로만 수업’ 2년 만에 어떻게 …

중앙일보|기사입력 2008-01-25 04:47 |최종수정2008-01-25 07:49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강홍준.배노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4일 밝힌 영어 공교육 실천방안의 핵심은 “2010년부터 모든 고교의 영어수업은 영어로 한다”는 것이다. 고교 영어교육의 질을 높여 학생들이 사교육에 매달리지 않아도 영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수능 영어시험(2013학년도)을 폐지하고 상시 영어능력평가시험을 도입하겠다고 한 인수위 교육개혁안(22일)이 “사교육만 조장할 것”이라는 비판에 부닥치자 서둘러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이날 “학교에서 공부한 것만으로 충분히 말하기·듣기· 읽기·쓰기 등 실용적 능력을 갖춰 기러기 아빠를 퇴출하는 게 목표”라며 “사교육 광풍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수위 대책은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이 많다. 모든 고교에서 영어 수업을 영어로 한다는 거창한 목표만 내놨을 뿐 2년의 짧은 기간 동안 영어 잘하는 교사를 어떻게 확보하고, 교육과정은 어떻게 수술할지에 대한 세부 계획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 박사학위 대학교수들도 영어실력이 달려 영어수업을 회피하고 있는 실정인데 인수위가 영어교사들의 영어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성급하게 대책을 쏟아낸다는 지적도 있다.

◇영어 잘하는 교사가 적다=현재 전국의 일반계 고교는 1400여 개, 영어 교사 수는 1만5000여 명이다. 영어 교사를 한꺼번에 많이 뽑지 않는다면 학교당 평균 10명인 영어교사가 학급당 평균 33명의 학생 앞에서 영어로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서울 한영고 주석훈 교사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기엔 학생 수가 너무 많다”며 “말하기·글쓰기 교육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영어 교사들의 실력은 더 문제다. 교육부가 2006년 조사한 결과 주당 1시간 이상 영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고교 교사는 전체의 50.5%에 불과했다. 교사 중 절반은 사실상 영어로 영어 수업을 할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 K고의 한 교사(45)는 “19년 동안 거의 영어로 수업을 하지 않았는데 당장 2년 후에 가능하겠느냐”며 “인수위가 영어 교사들에게 망신을 주며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인수위는 영어 수업을 할 수 있는 초·중·고 교사를 매년 3000명씩 양성하고 기존 교사들은 재교육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어회화나 글쓰기 실력이 단기간에 느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촉박해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교직 개방 불가피”=인수위의 한 자문교수는 “인력 풀이 적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사자격증이 없는 학부모, 학원 강사도 필요하면 충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선 학교는 방과 후 학교 등 정식 수업이 아닌 보충수업에서만 학교 밖 재원을 활용해왔다. 정식 수업 시간에 교원자격증이 없는 우수 인력을 충원할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원 관련 법령을 손질해야 하지만 전교조와 한국교총이 반대하고 있다.

인수위 이주호 간사는 “학교를 근본적으로 바꿀 방안을 30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교직 개방 같은 안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병민 서울대 교수는 “인수위의 대책은 단순한 타임 테이블만 있을 뿐 교사 양성과 교육과정 개편 같은 난제를 어떻게 풀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고 평가했다.

강홍준·배노필 기자